지리산 일대를 지배한 천왕 할머니는 자비심이 많고 모든 사람이 잘 살기를 항상 기원했으며, 어느 집에 불행을 미리 방지해 주기도 했다. 천왕할머니의 덕으로 이 고장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천왕할머니가 사시는 백무동에 찾아가 빌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도 했다. 어느 날 법우 스님이 지리산에 입산하여 수도를 하기로 작정하고 입산했다. 깊은 동굴에 앉아 그는 좌선과 수도를 계속했다.
몇 년이 흘렸다. 법우스님은 더욱 정진했으며 불심은 깊어만 갔다. 그런데 어느날 법우스님이 좌선을 마치고 동굴을 나와 거닐고 있었다. 산속의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깊게 들어 온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이 곳이 어느 곳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두려움과 낯설음으로 해서 초조해 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를 했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리산 어느 곳도 그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기에 법우스님은 천왕할머니를 생각했고 또 구원을 청할 결심을 했던 것이다. 법우스님은 두 손을 합장했다. 천왕할머니 저에게 길을 인도해 주시옵기 바랍니다. 그는 갈구했다. 바람소리가 휙 지나며 “법우스님이구먼, 어떻게 하다 길을 잃었소? 자 나를 따라오시오.” 부드러운 말소리가 들려 왔다. “누구십니까?” 법우스님은 물었다. 마는 천황입니다. 법우스님은 고개를 들었다. 이제까지 그는 천황은 할머니니깐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천왕할머니의 얼굴을 보자 법우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천황할머니는 복사꽃 같은 뺨에 칠흑 같은 머리카락, 반달 같은 눈썹과 물먹은 입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만 계시오...어서 일어나시오.” 천황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법우스님을 재촉했다. “예, 알겠습니다.” 법우스님은 멍하니 일어섰다. 그리고는 천황의 뒤를 따랐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일 것이며, 가장 자비심이 많은 여인일 것이라는 사념뿐이었다. 그의 동굴 가까이 이르자 천황은 법우스님께 말했다. “여기가 당신이 거주하는 곳이지요. 저는 여기서 얼마 되지 아니하는 백무동에 살고 있어요 이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나는 갑니다.” 그 말을 남기고 천황은 갔다.
법우스님은 까딱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그대로 서 있었다.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허허.....그러나 천황이 처녀일 줄은 몰랐구나?) 그는 동굴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의 머리엔 천황의 모습으로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고 그저 막연하게 그녀가 좋다는 생각뿐이요. 지금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고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조차 싫었던 것이다. 그날이후 법우스님은 천황할머니를 다시 보는 것이 전부였고 그만 모든 일에 뜻을 잃고 말았다. 법우스님은 빌었다. (천황할머니, 당신은 나와 결혼하여 주십시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저는 죽고 말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날마다 빌었다. 천황할머니는 법우를 측은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자) 천황할머니가 법우스님을 측은하게 여겨 결혼을 했다. 법우스님은 파계승이 되었다. 그는 백무에 살면서 그녀와의 사이에 딸 여덟을 낳았다. 이 딸들은 모두 높은 무당이 되어 전국으로 각각 보내졌고 제각기 그곳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 중 셋째딸은 벽소령을 넘어 청학동 삼신봉을 거쳐 하동에 정착하였고 그로부터는 하동 지방의 재앙이 들어도 함양 마천 백무동까지 찾아갈 필요도 없이 천황할머니 셋째딸의 영험을 빌게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인지 하동무당의 시발이 되어 지금도 1백여명의 무당이 있다.